읽었던 게 대개 해문출판사 것들이었는데, 아이큐 두 자리가 그렇게 크리스티 여사의 몇몇 작품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벨기에인이 급행열차 타고 이스탄불을 빠져나가다 맞닥뜨린 사건에 대하여는, 80년대 중반 티비에서 74년판 영화로 본 일도 있고 해서 원작을 읽은 적은 없다(범인을 아는데 읽어서 뭐하노?). 그렇지만 세상천지가 다 아는 범인들에 관한 재탕 삼탕 추리물이라도 영화는 본다. 특히, 시작된 지 이삼 분 만에 수작이리라고 바로 직감할 수 있는, 게다가 살인사건을 단지 퍼즐로만 여기는 얄팍한 살롱 무드가 살짝 뒤로 빠져 주는 이런 포와로-등장극은 놓쳐서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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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 그리고... 눈물
스토리는 극의 초두와 대미를 장식하는 이 두 표정 사이에서 전개되는데, 원제를 제치고 타이틀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 2010판은 무슈 포와로의 복잡한 심경과 고독이 극의 두각이다.
"내가 과연 옳은 일을 한 것인가?"
범인 지목과 단호한 논파의 결국은 언제나 모든 범인의 몸과 정신과 어느 옳바르지 못한 선택에 대한 죄과를 법정에 세우는 일로 끝맺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목한 범인이 바로 콧수염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을뿐더러 자주 겪는 일이라 해서 면역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창조주 크리스티 여사조차 싫어해서 빨리 죽이려 했다던) 이 에고이스트의 얼굴과 체면에다 핏물을 튀기고 그렇게 보란 듯이 자신을 시체로 만들며 법망과 절망을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리는 통에 탐정은 그런 짓이 몹시 불쾌하고 치사하고 괘씸하다. 그러다 분노와 동요와 혈흔은 곧 정수리를 타고 들어가 점차 멍이 되고 큼지막한 좌절이 되어 벨기에인의 마음은 시꺼먼 그을음 같은 회한으로 가득하게 된다. 법 앞으로 몰고 가려다 결과적으로 자살로 몰고 간 지경에 대하여 자기 변명에 가깝기는 했으리라마는, 그래도 어떤 행동이든 선택한 자의 책임이라 하여 입술로는 자기가 옳았다고 우길 여력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었다.
"앞으로 대체 어느 나라의 형사사건만 맡아야 한단 말이냐?"
국경을 넘나드는 런던행 특급열차를 타기 전 그곳 이스탄불에서 탐정은 딴 남자의 씨를 배태하고 도망가던 어느 아낙네가 남편과 동네 사람들에게 붙들려 돌로 맞아 죽는, 일종의 명예살인 현장을 엿보게 된다. 공권력 개입도 그럴 틈도 없이 떼로 몰려들어 벌이는 격정적이고 즉각적인 판결 및 야만적인 법 집행을 목도하기에는 때마침 자살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던 바 정신적으로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곤고한 처지의 여인에겐 장교처럼 자살을 선택할 은혜롭고 사치스러운 틈도 총도 없었고, 한편 포와로에게는, 돌덩이를 쳐던 이슬람 신사 숙녀 여러분을 불러 모아 엄숙한 정적과 서구적 교양인의 자세를 강요하고 자신의 추리력과 명성을 걸어 여인의 임신 경위를 따질 만한 분위기도 장소도 애초에 아니었거니와, 늘 묵주를 소지하고 다니던 그에게 그 가운데로 끼어들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며 예수 행세를 할 수 있는 용기도 권위도 터키어 능력도 없었다. 이 속수무책이 이국 방관자의 정언명령적 정신의 무엇인가를 또 심각하게 훼손했다. 그랬으리라고는 하나, 저 보기에 그같은 종교적 자치 처형 방식이 심히 불쾌하고 부조리할지라도 소크라테스의 임종과 유언이라도 마음에 떠올려 두고는 국경 없는 법이 없는 만큼 그것이 남의 나라의 악법이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애써 자위할 여력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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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영화는, 우리더러 사설탐정의 심적 상태를 염두에 두고 같이 열차를 타라 하고, 극중 시종일관 안쓰러울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하고 나오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정서적 동의를 얻어내고야 마는) 그가 어떤 심정으로 사건과 조우하며 정의를 옹호하다가도 어떻게 가해자들의 처지를 곤혹스러워하는지 잘 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표현하고 싶었을 크리스티 여사가 어쩌다 망각했다고 믿고 싶은, 무슈 포와로의 저 눈물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