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 앤 헤드폰


  뭉크의 대표작, 절규하는 대머리를 보고 오를록 백작을 떠올린 건 아니었다. 다만 탁구공 눈알을 박아 넣는 김에 떡니도 살짝 그려 넣고 싶은 충동을 따르다 보니 "노스페라투"의 영락없는 그 흡혈귀 꼴이다.

  " 絶叫 ". 말이 참 좋다. 누구든 알아주십사 하는, 절규라 할 만한 저런 심각하고 무거운 고함을 지르며 예술적으로 고통스러워한 적은 없다. 아이큐 두 자리가 그런 차원적인 고통을 짊어져서야 되겠는가. 한데 원그림을 보고, 창공이 노을빛에 물들어 어스름해질 무렵 산책 삼아 다리 위를 거닐다가 재수 없이 똥 밟았다고 저렇게 절규했을 리는 없다고 해서, 사내가 몸을 비틀면서까지 무얼 그리 절규했을까 굳이 물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누구나 직관 하나로 알 수 있다고 여겨지곤 하는 무슨 풍설, 물론 무슨무슨 불안에 관한 것이다.

  다리를 건너오는 동안 남자가 줄곧 저 모양이었던 것도 아닌 것 같다마는, 보다시피 귀를 막고 절규하고 있다. 누구 들어라고 하는 절규는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 폼을 보아 우리는 '순수하게도' 단번에 환청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돌았구나!"

  그래, 돌았다. 머리 일부를 구성하는 입과 귀와는 별도로, 골 안에서 생긴 잡음을 밖에서 나는 소리라고 죄 없는 귀를 가리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두개 속의 뇌수는 말초신경계가 외계의 인상들을 수집해서 그대로 갖다 바치는 세계의 거울이 아니었던 게다.

  그런 저 남자가 불쌍하다고 폰카로 찍은 내 왼손을 양 귀퉁이에다 오려 붙이고 구원의 헤드폰을 그려 넣은 건 아니다. 원래 동정심을 일으킬 만한 화풍도 아니올시다. 곤비한 정신의 빈곤한 상상만큼이나 그 폼이 헤드폰에 딱 맞게 보이는지라 그저 귀에 관해 뭔가를 씨불일 또 한 번의 기회로 삼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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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취사선택


  넷상에서 건진 얄궂은 귀 사진에다 현재 사용 중인 스피커의 이어폰 구멍 사진을 갖다 바른 다음, 피씨 옆에서 한참을 썩어 가던 타블렛으로 약간 손질한 것. 지금 심정을 반영하기 위해 당 블로그의 프로필용으로 만들었다.

정말이지 귀는 막고 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눈에는 눈꺼풀이 있으면서, 그놈의 귀에는 왜 좆같이 귓꺼풀 하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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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rot: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 포와로의 눈물

  읽었던 게 대개 해문출판사 것들이었는데, 아이큐 두 자리가 그렇게 크리스티 여사의 몇몇 작품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중, 벨기에인이 급행열차 타고 이스탄불을 빠져나가다 맞닥뜨린 사건에 대하여는, 80년대 중반 티비에서 74년판 영화로 본 일도 있고 해서 원작을 읽은 적은 없다(범인을 아는데 읽어서 뭐하노?). 그렇지만 세상천지가 다 아는 범인들에 관한 재탕 삼탕 추리물이라도 영화는 본다. 특히, 시작된 지 이삼 분 만에 수작이리라고 바로 직감할 수 있는, 게다가 살인사건을 단지 퍼즐로만 여기는 얄팍한 살롱 무드가 살짝 뒤로 빠져 주는 이런 포와로-등장극은 놓쳐서 될 일이 아니다.


침울 그리고... 눈물

  스토리는 극의 초두와 대미를 장식하는 이 두 표정 사이에서 전개되는데, 원제를 제치고 타이틀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 2010판은 무슈 포와로의 복잡한 심경과 고독이 극의 두각이다.
"내가 과연 옳은 일을 한 것인가?"

  범인 지목과 단호한 논파의 결국은 언제나 모든 범인의 몸과 정신과 어느 옳바르지 못한 선택에 대한 죄과를 법정에 세우는 일로 끝맺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목한 범인이 바로 콧수염 앞에서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을뿐더러 자주 겪는 일이라 해서 면역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창조주 크리스티 여사조차 싫어해서 빨리 죽이려 했다던) 이 에고이스트의 얼굴과 체면에다 핏물을 튀기고 그렇게 보란 듯이 자신을 시체로 만들며 법망과 절망을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리는 통에 탐정은 그런 짓이 몹시 불쾌하고 치사하고 괘씸하다. 그러다 분노와 동요와 혈흔은 곧 정수리를 타고 들어가 점차 멍이 되고 큼지막한 좌절이 되어 벨기에인의 마음은 시꺼먼 그을음 같은 회한으로 가득하게 된다. 법 앞으로 몰고 가려다 결과적으로 자살로 몰고 간 지경에 대하여 자기 변명에 가깝기는 했으리라마는, 그래도 어떤 행동이든 선택한 자의 책임이라 하여 입술로는 자기가 옳았다고 우길 여력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었다.

"앞으로 대체 어느 나라의 형사사건만 맡아야 한단 말이냐?"

  국경을 넘나드는 런던행 특급열차를 타기 전 그곳 이스탄불에서 탐정은 딴 남자의 씨를 배태하고 도망가던 어느 아낙네가 남편과 동네 사람들에게 붙들려 돌로 맞아 죽는, 일종의 명예살인 현장을 엿보게 된다. 공권력 개입도 그럴 틈도 없이 떼로 몰려들어 벌이는 격정적이고 즉각적인 판결 및 야만적인 법 집행을 목도하기에는 때마침 자살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던 바 정신적으로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곤고한 처지의 여인에겐 장교처럼 자살을 선택할 은혜롭고 사치스러운 틈도 총도 없었고, 한편 포와로에게는, 돌덩이를 쳐던 이슬람 신사 숙녀 여러분을 불러 모아 엄숙한 정적과 서구적 교양인의 자세를 강요하고 자신의 추리력과 명성을 걸어 여인의 임신 경위를 따질 만한 분위기도 장소도 애초에 아니었거니와, 늘 묵주를 소지하고 다니던 그에게 그 가운데로 끼어들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며 예수 행세를 할 수 있는 용기도 권위도 터키어 능력도 없었다. 이 속수무책이 이국 방관자의 정언명령적 정신의 무엇인가를 또 심각하게 훼손했다. 그랬으리라고는 하나, 저 보기에 그같은 종교적 자치 처형 방식이 심히 불쾌하고 부조리할지라도 소크라테스의 임종과 유언이라도 마음에 떠올려 두고는 국경 없는 법이 없는 만큼 그것이 남의 나라의 악법이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애써 자위할 여력이 아직까지는 남아 있었다...


  이와 같이 영화는, 우리더러 사설탐정의 심적 상태를 염두에 두고 같이 열차를 타라 하고, 극중 시종일관 안쓰러울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하고 나오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정서적 동의를 얻어내고야 마는) 그가 어떤 심정으로 사건과 조우하며 정의를 옹호하다가도 어떻게 가해자들의 처지를 곤혹스러워하는지 잘 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표현하고 싶었을 크리스티 여사가 어쩌다 망각했다고 믿고 싶은, 무슈 포와로의 저 눈물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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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波牛) : 이새봉

  요사이 "土豆网(tudou.com)"라는 대륙의 동영상 사이트를 열나게 드나들며 옛 홍콩영화를 훔쳐보고 산다. 물론 말도 못 알아듣고 글도 못 읽는다마는, 그래도 어쨌든 보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게 명색이 홍콩영화. 하물며 본 적이 있는 영화라면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십오, 육 년 만에 보는 것인데, 당 육박전 축구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시아의 수퍼촐랑이스타 원표나 쌈 잘하는 악역스타 적위(狄威)보다, 드문드문 나오는 바람에 거의 단역 꼴이 된 이새봉(李賽鳳), 이 어여쁜 꾸냥이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본다 해도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던 바, "어쭈구리, 오날따라 왜 이리 예뻐 보이지?" 그리 생각했다(원래 예쁘지만).


http://www.tudou.com/programs/view/1F4Ba84q5B0/

  이 느낌이 어찌나 새삼스러웠는지 무의식이 무의식중에 기억을 검색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검색 결과는 이틀이나 걸리도록 더뎠는데, 그 내용인즉 신정환급 광대뼈에 얽힌 기억이었다. 한참 후에야 누군가와 닮았다는 느낌이 뒤따랐던 게다. 그렇다고 소피아 로렌이나 토키와 타카코처럼 누군가의 광대뼈가 그들의 콧대와 높이를 겨룰 만한 규모라고 할 것까진 없다. 그 기억은 어느 마름모꼴 얼굴 윤곽과, 그 면적 안에 오밀조밀하고 예쁘게 구성된 이목구비가 배꼽 밑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불어넣고 남근을 불러 세웠던 사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하야 기억이 추려 낸 (한때 볼 때마다 소생으로 하여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들었던) 그 얼굴로 말할 것 같으면.. (클릭)
왜국 AV 아이돌스타
川嶋和津美
아이고 예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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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 8 : 괴물과의 조우


  두 번째 예고편에서 느낀 당 영화의 가장 큰 유혹이 무엇이었냐 하면, 저 두 사나이가 하고 있는 딱 칠십 년대 말의 그 행색이었다. 초능력물로 착각했던 관계로 괴물 혹은 에이리언이 등장하는 줄도 몰랐거나 어쨌거나, 스토리야 따블제이와 이티 감독한테 맡겨 두면 되지 하고서 봤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이구 저런! 변성기도 채 거치지 않은 남자 애들하고 금발 딸내미가 주인공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째지는 목소리들이 을매나 시끄러웠는지 말도 마라.


  아이들이 슈퍼에잇으로 찍던 영화는 좀비물이었다. 그러나 카메라 밖으로 좀비가 나오는 일은 없거니와 대신 외계생물 한 마리가 나온다. 지구 출신의 사람의 아들인 리빙데드는 오락적인 상상과 필름 속에 가두고 미지와의 조우를 리얼리티로 삼았다는 게다. 배경 년도가 칠십구 년이면 그 전년도에 전세계를 휩쓴, 크립톤 출신의 클라크 켄트라는 우호적인 외계인 영화가 있었을 텐데도, 괴물이 나타나 버스를 뒤집을라치면 어디선가 빨간 망토를 펄럭이며 두 팔 뻗고 날아들 외계인이라도 찍게 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 어린 대사 하나 없었다(쳇!). 게다가, 비릿한 문어 피부에 흉측한 짐승 꼴을 한 거대한 외계 걸리버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갇혀 군인들 및 과학자들한테 당한 생체실험 내지 그런 프랑켄슈타인 박사들에 대한 환멸 때문인지 독을 품고 복수심에 불타거나 아니면 실험으로 정신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설치고 다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지나친 인상인가?

  액자적인 존재였던 좀비의 마인드를 받들어 사람을 잡아먹는 야먄과, 야만적인 모습을 하고 얄궂은 고물들을 모아다 조립하여 혹성 탈출을 감행하려는 피해자 이티. 더러워서 이런 야만적인 혹성에선 도저히 못 살겠다며 타고 날아오르는 비행물체와 그 장관을 등장소년소녀들이 군바리들과 나란히 넋을 잃고 관람한다. 활주로 없이 날아온 대로 날아갈 수 있는 앞선 외계 문명의 위대함, 우와~! 아마 이런 상쇄 효과라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니, (적어도 주인공) 애들의 심적 정화를 위해서라도 외계생물의 행각이 남긴 트라우마를 지우고 괴물과의 조우를 미지와의 조우로 삼아 극을 마감하려는 수작이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불만의 반열에 오를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관람 중반부터 스필버그의 옛날 영화들을 계속 떠올려야 했던 것이 불만이었다. 본 것을 돈 내고 또 본다는 느낌에 시달려야 했다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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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 FC : 세바스찬 쇼우

  수적으로 극소수 같으면 기적을 행한다 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절을 하고 각 뮤턴트를 축으로 신정국가들이 건국되었을련만, 원작자가 많은 뮤턴트들의 등장을 감안한 탓인지, 그들 중 일부의 외모를 책잡아 전체를 몬스터라 싸잡는 시민적 공감대나 인류 대 뮤턴트 구도가 형성되기도 전에 제풀에 주눅이 든 옛날 뮤턴트의 기본 정서에서 시작한다는 분위기다. 그들의 능력이 열등감으로 억압되어 있는 것은, 코믹답게 뮤턴트들을 다발로 등장시키려면 공생에 관한 시민권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에서 기인한 모양인데, 공권력적인 어떤 파괴력에 저항할 수 있고 또한 어떤 독자적인 파괴력으로 한 도시 전체를 거덜 낼 수 있는 네 이웃의 파괴력 및 언제 들고일어날지 모를 잠재적인 지배력을 사랑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등장뮤턴트 중 몇몇은 단독으로 세상을 개차반으로 만들거나 적어도 상당한 수준의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실로 경이로운 능력을 지녔다(정말이지 대단한 능력들이다!). 선망하기보다 이 설화적인 능력들을 "돌연변이" 카테고리 하나로 엘리펀트맨의 흉측한 외모 정도에 끌어내려 차별하는 윤리가 병신이나 되는 듯 그들로 숨어 살게 하고 그같은 은둔이 세상을 어느 정도 평온케 하고 있었다는 기운까지 감돈다.


  에릭이 해저의 잠함을 보란 듯이 끌어올리는 장관에 버금가는 아리따운 로즈 번의 란제리 차림 외에도, 우리는 숨어서 살기는커녕 뮤턴트계만의 결속을 다져서 그 고요한 기운을 깨트리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정치계의 막후에 출몰하여 냉전시대의 정점을 조성하고 다니는 세바스찬 쇼우와 그의 신기를 목도할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0Yq7Za1JnZg&feature=player_embedded#at=67

  어떤 물리적 파괴력이라도 흡수하여 되받아치는 특이한 능력이다. 이 능력은 시간을 두고 쩨쩨하게 서서히, 그러나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초장에 매드사이언티스트연하던 그 역시 돌연변이였다는 각본이다. 수류탄 들고 와서 내 돈 내놔라고 위협하는 장성에게 그것을 빼앗아 몸소 터트려 보이면서 몸에 상처 하나 안 생기는 수준이 아니라 선글라스 및 새하얀 정장은 물론이고 백구두에도 흠집 하나 안 나도록 '폭발 중인 폭발'을 모으고 꾹꾹 눌러 말아서 작은 덩어리로 만든, 폭탄도 아닌 폭발을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불구덩이 속에서 초연한 표정으로 의연하게 걸어나오기는 하되 거지꼴을 한 터미네이터처럼은 안 되더란 말이다. 여기서, 기이한 능력을 가진 괴뢰 뮤턴트들의 통솔자가 단지 정치적인 야심만 가진 인간이 아닐 뿐만 아니라 보스 지위에 걸맞게 세상을 초토화할 수 있는 불사신임에 도리어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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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크라이스트 : X도 아닌 제목

  무대는 에덴. 그렇다고 동산은 아니고, 여자가 아들 닉에게 신발을 좌우 거꾸로 신기고 마녀사냥 관련 문헌을 참조하여 "여성 살해(gynocide)"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던 곳이다. 스스로 있는 자께서 단 엿새 만에 유니버스를 통째로 급조하시다가 제풀에 지쳐 하루 쉬셨다던 그 창세 시절의 요소로서는 남과 여, 그리고 에덴이라는 지명 정도에 불과하며, 흐름상 여성 살해에서 돌연 왜 가족 살해로 전이되어 가야 했는지는 미궁이다.

  해괴한 제목과 오두막집 주소에 꾀여서는 어느 핵가족의 살벌한 이야기를 두고 플롯의 한 전환점이기도 했던 중세적인 요소와 여성성, 환각, 악과 자연의 연합이나 성기 훼손에 관한 문제를 숙제 삼아 골몰한 나머지, 이천 년 전 원시개독적 상황과 구약의 첫 장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나체촌의 기원이 된 동산에서 선악과 서리를 했다가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그제서야 성기가 또렷이 보였다는 일화와, 무화과 이파리를 빤스 삼았다던 두 미개인과 관련하여 저 제목에 과연 무슨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하고 현대적이고 안티바이블스런 해석의 길을 찾아 늘어놓는 일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저 종말론적 제목과 그것이 암시하는 의미를 가정하고 응고하려 드는 정신적 긴장감을 가지고 관람에 임한 건 사실이고 또 제목 휘하의 해석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저 타이틀이 좆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부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로트레아몽)"과 같은 얄궂은 낱말밭에서 연관성의 부재에 쓸데없이 감동한 일이나 문맥의 조명 하나 없는 인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그 일을 초현실적 경험이라 자랑하는 감성이라면 몰라도, 저 제목이 추상에서 내려와 영상으로 체현된 꼴을 말한다면 내용이 저렇게 된다거나 스토리의 각 부분이 향하여 일제히 수렴될 그곳으로 제목이 저렇게 될 필요는 없다(물론 이런 견해 역시 쩨쩨할 정도로 포괄적이어서 '그냥 해본 소리'에 불과하다). 소생은 관람 후에 왜 저런 제목일까 하고 감독의 생각을 읽으려다가 얼마 후 그런 자문이 한심하다고 느꼈다. 단적인 위악도 아니었고, 자식 잃은 것을 제 탓이라 한 것도 모자라, 악에 대해 공부해 두었던 김에 자신을 악하다고 믿고 돌아 버린 여자의 얄궂은 행각을 쫓는 내용과 그놈의 적그리스도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http://www.cinemeh.com/2010/03/antichrist/
(※이 사진의 블로그가 온통 이런 해석으로 똥칠갑해놓은 것같이 보이겠지만
막상 읽어 보면 이 사진을 왜 발라놓은 건지 모르겠다)

  보지 못해 아쉬운 잘린 장면들과, 스토리 자체만으로 대단히 흥미진진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제목 가지고 내가 왜 이같이 정색하게 되었는가? 저 사진 블로그에 달린 댓글처럼 《ANTI CHRIS》에서 an/the 및 여성성을 구별하여 원시적인 특정 종교의 미개한 전인류적 종말론을 어느 실성한 여자가 일으킨 어느 핵가족 규모의 종말로 축소하여 이해하려 하고, "안티크라이스트"의 의미가 어찌 바뀌었든 거기서 또 파괴자라는 같은 속성을 추출하여 유지하려는 태도가 다음 단계로서 영상적인 "심볼"에 대한 무엇을 어떻게 끌고 와 설명을 할지는 모르겠다. 한데 작자의 의도적 산물이라 하여 등장인물의 행위와 장소에서 일일이 심볼을 감지하려 들거나 "숨은" 의미를 캐내려고, 나무 밑에 저같이 움푹 패인 구멍이라도 볼라치면 그게 자궁으로 보인다 하니, 잔뿌리 모양도 무슨 보X털 같다 하면서도 유방은 어드메뇨 하고 찾지 않는 그 논리가 지시하는 것이야말로 이른바 은유적인 감성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또, 다리에 미니 연자방아를 달리운 꼴을 유죄라 칭할 때는 그런 환유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판관 겸 집행인이 여자였다는 것을 망각해야 될 판이다. 그래서 낯짝을 살짝 쪼개며 심볼 상관관계적인 농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 그러면 자궁 속에 유죄가 빠진 꼴은 뭐라 해야 되나? 연자방아형을 선고받은 남자의 대가리가 좆대가리라도 되는가? 또, 망설임은 뭣 때문에 자궁 앞에 와서 뻗어 있는가? 등등.. 물론 어떤 것들은 매우 당연하고 타당하게 또는 강렬하게 심볼 행세를 하게 마련이다. 그래도 저런 스냅 장면에서 저런 식으로 의미를 더듬어 내거나 발상해내는 그 "방식"이 내게는 더 FUCKING WEIRD하다. 제목의 의미를 심히 따져 보다가 그냥 그놈의 제목에 오염된 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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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요 며칠 전에 술 한잔 걸치고 귀가한 그 길로 샤워를 하다가 괴이한 변을 겪은 적이 있다.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퍼마시지도 않았는데, 가벼운 이인증상(離人症狀)을 보인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온수로 온몸과 성기를 적시고, 또 면도를 하느라 거울 앞에 턱을 내미는 그때에 사람이 팍 늙어 보인다는 건 둘째 치자. 요새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마주치지 않으려 자신의 마주보는 동공을 피해 가며 시선을 되도록 상악과 하악에 맞추어 겨우 면도를 마쳐야 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생겼는데, 이야기인즉,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참으로 오싹했다. 어째 자신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고 송연해야 되느냔 말이다.. 내가 돌았나?

  거울 속의 누군가는 소생의 흉내를 내는 것 같았기로 무언극 흉내가 따로 없었다. 면도기를 코밑에 갖다 댈라치면 그놈도 0.5초 정도의 간발을 두고 그 동작을 따라하는 듯했다. 무섭다 하여 깎다 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거울 속의 눈깔을 피할 겸 남은 수염에 시야를 좁히려 거울에 바짝 다가간 간격을 무시하고 놈은 이쪽 몸짓을 응시할 만한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 딱 한 발작 정도 살짝 물러나 있는 듯했는데, 그래서? 보고 따라해야 된다 이건가?

  이같은 자기 소격감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한편에서는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이 사태를 기이하게 여겨 이것이 혹시나 정신의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는 것인지 어떤지 그 연유를 묻는 나 자신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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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녀유혼 : 우마, 고천락


http://www.youtube.com/watch?v=Bnwzb7oYoxE

  이번 리메이크판에서 고천락의 "연적하"를 보고 있노라니, 옛적에 노상 쩨쩨하고 치사한 인간 역만 분하던 우리 우(午馬) 대인이 앞머리를 밀고는 관운장식 수염에 눈썹을 높이 치켜들어 불가사의하게도 "천녀유혼"에 나타났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수리에 냄비 꼭지를 달고서 사찰 난약사의 석상들 가운데 칼 들고 달밤체조할 때 그 뒤를 따라 낙엽들이 윙윙 춤추던 그 추남 퇴마사. 쪼다 영채신에겐 있을 리 만무한 수호 능력을 대신 발휘하던 연적하. 웃음도 그전의 얍삽한 헤헤헷이 아니라 으하하였다. 당시 을매나 멋있었겠는가!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76459&mid=14990

  고천락 분 연적하. 빗질하다 만 머리와 똥 씹은 얼굴로 멜랑꼴리를 표한다. 무슨 곡절이 있다는 게다. 이 각색이 소생 마음에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판단이 안 서지만 별 저항감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국영의 혼이라도 깃들어야 했을 여소군의 빈약한 아우라 탓에 감정이입이 그만큼 연적하한테로 돌아갔다 이 말이다. "제가 장국영 선배님을 대신해서 나왔는데요!" 그리 까불라치면 "쟨 누구야" 하고 비공을 쳐들어 콧방귀라도 한번 뀌어 줄 참이다("매란방"에서의 산듯한 연기를 생각하면 갈등이 좀 생긴다마는). 그리고 "장국영 땜빵배우 여소군을 대신해서 내가 이 영화에다 다른 차원의 무게를 한번 실어 주지" 하고 고천락이가 무게 잡아 똥 씹은 얼굴을 선보인다는 것에 대해서 아리따운 귀신과의 썸씽으로 인한 그 사연 깊은 우수를 못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영화는 감정이입이 연적하 몫이라는 무드로 시작했었으니까. 그렇다고 그게 삼각관계랑 무관했던 우리 우 대인의 변신만큼 의외였고 참신했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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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명장 관우 + 조조 + 기란 - 유비

  어떤 유형의 각색이든 《삼국지》 하면, 같은 "羽"의 반열로 관羽를 향한, 한국 만화계의 최고봉이자 익살맞은 재담가였던 고羽영 화백의 아낌없는 역성과 능글능글한 "쪼다 유비" 묘사를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 영화에서도, 조조의 마지막 대사야 어쨌든, 관운장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이 모사의 일편단심은 하도 유난하여 관우는 밥상을 차리고 유비는 어디선가 퍼져 앉아 그 밥상을 기다리기만 하는 얍삽한 놈으로 보도록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긴 수염이 연모의 정을 감추고 형수님이라 불러 마지아니한 동향 하동(河東)의 꾸냥 기란은 일개의 극성 팬에서 낭군이 될 쪼다의 말에 같이 올라타 등짝에 찰싹 달라붙는 귀한 몸이 되어 난리통을 빠져나가는 영광과, 이후 하늘 같은 형님의 형수라 하여 전쟁영웅 관우를 감히 거느리는 지위 및 언월도의 비호를 철저하게 누리는 여자로 묘사된 인상까지 풍기기로, 나중에 보다 못한 조조가 뭐라고까지 했는가? 정 한번 안 주는 저런 좆도 아닌 년을 목숨 걸고 지켜서 뭐하냐고 이성과 무정한 여자를 잃고 광분한 관운장을 나무란다. 바른말이로소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IlzjWDCnyI4

  영화는 쌍고검(자웅일대검)과 장팔사모의 부재를 이용하면서까지 운장을 향해 조아려 "소인배 역"을 자처하는 조조의 인간적이고 자학적인 예(禮)를 부각시킨다. 쪼다의 삼고초려가 쩨쩨해서 무색할 지경이다. 가까이서 보면 간악하기보다는 당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아마도 간웅 조조는 그런 인간적인 인물일 성싶다. 일시적이나마 관우 역시 흔들릴 만도 한 것은 자연스러웠는데, 친애하는 고 화백조차 이 수위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하여 운장이 이 불세출의 지략가를 단지 몰라 준 것만은 아니라 해야 맞다. 가슴에 품은 부동의 의(義)와 언약의 줏대를 내세워 유비의 아우 된 도리와 가야 할 길을 아무리 주장한들, 조조 눈에 유비현덕은 먼저 침을 발라 놓은 제 아우 심정도 모르고 총각의 편련을 가로챈 뻔뻔한 연적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물론 조조는 관우의 욕망의 대리행위자인 양 이를 이용해먹으려다 실패한다.

  이 실패 내지 좌절이 결과적으로 관우의 체면을 살린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점에 동의한다. 그리고 종막에 즈음하여 이번에는 기란이 관운장에게 좌절을 안겨 준다. 자신을 오로지 유비에게 데려다 주기만 하라는 뜻을 마음에 의논한 뒤 잔머리와 어여쁜 눈망울을 굴려 관우에게 거짓 프로포즈를 한 기란. 그러나 관우는 곧 유비한테만 질구를 열어 놓겠다는 야멸친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뺨을 만지려 한 그의 손길을 이 딸내미가 부지불각에 그만 피하고 만 것인데, 관 장군의 예기치 못한 (어딘가 파격적인) 행동에 대해 어눌한 연기로 답하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던 것. 이로 아우 된 도리라는 견고한 껍질을 실로 어렵사리 뚫고 나온 소박한 애정 표현이었건만 사출된 그길로 시들고 말았던 게다. 아니, 유비에게 청하여 당신과 꼭 결혼하겠다는 기란의 발언에 힘입어, 그리 마음을 먹어 준다면이야 의를 저버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손길에 형수의 볼이 자석같이 쏠려 착 달라붙으리라는 관우의 확신을 우리는 어이 헤아려야 할까?

  그렇다고 유비가 원래 여자 보는 눈이 없는 쪼다였다는 것을 드러낼 각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자는 남자가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했으며 이 사람 관우에 대하여는 백고초려라도 불사할 조조, 그 휘하에 머지않아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면 곤란한 건 제 신랑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연모를 알고 있는 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꾀를 내어 거짓 프로포즈를 하기로 했다. 유비에게 데려다 준다는 것은 삼형제가 상봉한다는 뜻이므로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흔들릴 일도 배신도 없으리라...고 봐야 되는가? 진짜 그런 마음으로 그랬다고 기란이가 곱게 보이는가? 소생은 조조의 일침에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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